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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압도하는 존재감이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평생 영업 사원으로 일해온 중년 남성과 한때는 그의 자랑이자 희망이었지만 현재는 아픔이 된 아들과의 애증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상처받는 가족들의 이야기와 회사에 헌신했지만 결국에는 버림받는 회사원의 씁쓸한 결말을 보여주며 1949년 공개된 이후 한 세기 가까운 시기 동안 사랑받고 있다.
배우 이상윤은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아들 비프 로먼 역에 배우 박은석과 함께 더블 캐스팅됐다. 윌리 역에는 박근형, 손병호가 출연하고 있다.
1940년대, 대공황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지난 7일 농협 농특세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상연을 시작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배우들의 호연과 어우러져 이질감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원작의 뉘앙스나 말장난 속에 나오는 말맛을 살리기 위해 고민했다"는 이상윤은 17세부터 34세까지 오가는 비프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삼성sds /사진=쇼앤텔플레이, T2N 미디어


"박근형 선생님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됐어요.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신구 선생님과 인연으로 여러 번 보러 갔고, 회식에도 몇 번 끼곤 했어요. 그러면서 많은 얘기도 나눴는데, 제가 궁금하셨나 봐요.(웃음)"
박근형은 현장에서 우리은행 인터넷뱅킹 공인인증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후배는 물론 스태프에게도 거침없는 직언을 하기 때문. 이상윤은 그런 박근형에게 "감사하다"며 "선생님의 말씀은 다 이유가 있고, 여러 단계를 내다보고 말씀해 주신다. 연습하면서 좋은 자양분이 됐다"고 전했다.
훤칠한 키에 배우로서는 드문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이력, 여기에 여러 예능에서 보여준 빼어난 신용불량자 운동 능력까지 이상윤은 "3개 유명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안받았다"는 고교 미식축구 유망주 17살의 비프와 유사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34세의 비프는 마땅한 직업도 없이 전국을 떠돌며 윌리에게 "게으르다"고 타박받는다. 윌리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자기 삶까지 놓아버린 것.
'포기'라는 것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듯한 이상윤에게 "캐릭터 자영업컨설팅 몰입에 어려움은 없었냐"고 묻자 "어려움보다는 비프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비프를 준비하면서 "캐릭터 그 자체에 집중했다"면서 고민의 시간을 들려줬다.
"비프 이야기의 끝은 결국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더라고요. 그래서 그의 비밀을 알고 충격을 받고, 흔들리는 거죠. 그런데 제 식으로 해석하고 너무 많이 고민한 탓인지, 연출님께서 '흔들리는 열혈 청년보다는 고뇌하는 지식인 같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때 박은석 배우를 봤어요. 좀 더 뜨거운 느낌의 비프를 보여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식으로 해석했죠."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2007년 영화 '색즉시공2'로 데뷔해 어느덧 올해 18년째인 이상윤은 이제 어느 현장에 가도 '고참'이 됐지만,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박근형과 손병호를 비롯해 어머니 린다 로먼 역의 예수정, 손숙까지 기라성같은 선배 배우들을 모시게 됐다. 이상윤은 그들 뿐 아니라 "은석이도 선배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공연에서 대부분이 저보다 먼저 연극을 시작했고, 경력으로 보면 다 저보다 선배"라며 치켜세웠다.
2019년 '올모스트 메인'을 시작으로 '라스트 세션', 지난해 '클로저'까지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이상윤이다. 매번 엄청난 비프의 대사량을 소화하며 해맑은 10대부터 아버지와 대립각을 세우는 30대까지 폭넓은 감정선을 보여주며 폭발해야 하지만, 이상윤은 "그게 연극의 매력"이라고 했다. "매일 다른 감정으로, 다르게 연기하며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기회가 된다면 "고전의 맛을 보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세일즈맨의 죽음'도 현대 고전이라 할 수 있지만, 셰익스피어나 이런 고전이 궁금해요. 지난해 박정자 선생님이 출연한 연극 '햄릿'을 봤는데, 거기에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이 나오셨거든요. 그걸 보며 이전에 못 본 매력을 봤어요. '나라면 해낼 수 있을까? 죽을힘을 다해서 하겠지만,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내내 했던 거 같아요. 그런 작품을 소화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