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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에서도 ‘교외’라고 하기에는 멀고, ‘시골’이라고 부르기에는 가까운 곳이다. 도로변에는 ○○산업, △△농업 같은 낡은 간판이 달린 휑한 가게들이 있고 그 뒤편으로 단층짜리 다세대 주택 네다섯 채가 모여 있다. 적갈색 벽돌로 지은, 오래되고 평범한 주택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다르다. 한 지붕 아래 출입하는 현관이 두세 개다. 마치 고시원 같은 구조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그러니까 집집마다 여러 집이 있는데,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세 들어 살아요. 특히 이 동네는 타이(태국) 사람들이 많아요.”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에서 통역 상담을 맡고 있 국민은행 전세금대출 는 한상훈씨가 말했다.
    원래는 부엌과 마당을 쉽게 드나들기 위해 낸 문이었을 법한 ‘현관’을 열자 이국적인 냄새가 퍼졌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타이식 쌀국수로 점심을 준비하던 세 여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세 명만으로도 발 디딜 틈이 없는, 사실상 현관과 구별되지 않는 비좁은 부엌 안쪽에는 서너 평쯤 되는 방이 있다. 새벽에 엄마들이 일 창원직장인밴드 하러 나가면 각각의 자녀인 맥스(4·가명), 제니(1·가명), 나나(8개월·가명)는 이곳 나나네 집에 모여 긴 하루를 보낸다. 소파와 바닥에 놓인 매트리스, 작은 접이식 식탁, 장난감 몇 개가 전부인 공간이다. 각종 공과금을 제외한 월세만 25만원이다.
    8개월 전 나나가 태어나자 집주인은 어쩔 수 없이 보일러를 고쳐줬다. 그마저 수리비의 핸드폰 할부회선 절반은 나나의 부모가 냈다. 월세인데 세입자가 수리비를 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한상훈씨가 말했다. “제가 대신 집주인한테 가서 따질까 하다가 관뒀어요. 곧 겨울인데 쫓겨나면 어디서 집을 구하나 싶어서. 미등록이잖아요. 나나 엄마도 그냥 반반 내겠다고 하더라고요.”
    큰오빠 역할을 하는 맥스가 아직 말을 못 뗀 동생들을 대신해 두 손을 가슴 앞 빠른대출서비스 에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싸왓디 크랍(안녕하세요).” 한국어가 아닌 타이어였다. 네 살인 맥스는 타이어로 대화하고 타이어로 생각한다. 제니도, 나나도 마찬가지다. 타이어로 칭얼거리고, 타이어로 옹알이를 한다. 세 아이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도, 한국 사람도, 한국 문화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한창 말을 배울 나이인 맥스는 한국어로 숫자만 셀 수 아파트매매세금계산 있다. 부모가 말할 수 있는 언어가 곧 아이가 따라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현관 밖을 바라보고 있는 미등록 이주 아동 맥스(가명). ⓒ시사IN 이명익


    한국에서 부모가 미등록 이주 노동자이면 자녀도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된다. 분명 존재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다. 주민등록번호도, 외국인등록번호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어떤 혜택이나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도 갈 수 없다. 원장 재량으로 받아줄 수도 있지만, 세 아이 모두 집 근처 어린이집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미등록 이주 아동
    육아는 가족과 이웃이 합심하고 국가와 제도가 뒷받침해줘도 힘든 일이다. 더구나 미등록 신분인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맥스, 제니, 나나의 엄마 모두 그걸 알기에 아이를 갖지 않으려 했다. 수도권에서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위한 클리닉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한 의사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통 이주 노동자 진료소에는 소아과가 잘 없어요. 애초에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거든요. 돈을 바짝 벌어서 고국으로 돌아가 가정을 꾸리려고 해요. 한국인 부부가 애를 낳아도 키우기 힘들잖아요. 외국인은 더 힘들죠. 미등록이면 말할 것도 없고요.”
    변수는 코로나19였다. 일거리는 없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한상훈씨도 팬데믹을 기점으로 미등록 아이가 많이 늘었다고 체감한다. 이제 20개월인 제니와 8개월인 나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이 정확히 몇 명인지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2월 2895명이던 미등록 이주 아동의 수는 2022년 말 5078명으로 늘었다. 이는 그나마 통계에 잡힌 아이들만 보수적으로 셈한 수치다.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국내 미등록 이주 아동이 2만~3만명일 것으로 추정한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등록 이주 노동자든 미등록 이주 노동자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을 혼자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세 아이의 엄마는 함께 모여 공동육아를 하기로 했다. 일을 하러 가기 전 다른 사람의 집에 아이를 맡기는 ‘육아 품앗이’를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어린이집을 만든 셈이다. 전날 농장 주인이나 식당 사장, 혹은 지인의 전화를 받고 일감이 생기면 이튿날 새벽 5시~5시30분에 출근하기 전 다른 아이의 집에 아이를 데려다준다. 열두 시간이 지나 오후 5시30분에 일이 끝나면 다시 아이를 데리러 온다. 대신 그날 받은 일당을 함께 적당히 나눈다. 세 사람은 주말에도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엄마들은 아이를 가리지 않고 어르고 달랜다.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다른 엄마 품에서 투정을 부리고 잠이 든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라면 다른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는 법을 알아가고 한글을 배울 시간에 세 아이는 주로 유튜브 영상을 본다. 놀아도 셋뿐이고 싸워도 셋뿐이다. 처음부터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나나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갈까 생각 중이다. “교육을 생각하면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아이가 한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잖아요.” 현재 미등록 이주 아동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는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입학할 수 있으나 고등학교부터는 진학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무엇보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루 평균 12만원 일당을 받아 살림을 꾸리는 부모의 입장에서 하루 수십만~수백만 원씩 드는 비용을 감당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달 전에 맥스가 손목을 다쳤어요. 그런데 정부랑 의사랑 싸우고 있어서 병원을 네 군데나 돌아다니다 겨우 치료 받았어요. 3일 입원했는데 300만원 나왔어요.” 치료비보다 더 막막한 문제도 있다. “아이가 아플 때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자세한 설명을 못 들어요.” 번역 앱을 통해 궁금한 점을 물어볼 틈도 없이 진료가 끝나기 일쑤다.
    어찌저찌 성인이 되어도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서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2021년 4월 법무부가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 대책’을 내놓았는데, 이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 아동이더라도 국내에서 출생해 15년 이상 국내에 머물렀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업을 위한 체류자격(D-4)이 나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더라도 1년간 임시 체류자격(G-1)을 얻을 수 있다. ‘국내 출생, 15년 이상 국내 거주’ 조건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이 나오자 법무부는 개선안을 발표해 2022년 1월 외국에서 출생했더라도 여섯 살 미만일 때 입국해 6년 이상 국내에서 살아온 아동에게도 체류를 허락했다. 하지만 이 구제 대책은 임시 제도로, 3개월 뒤인 2025년 2월28일자로 종료된다.



    자신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라서 미등록 이주 아동이 된 딸 나나(가명)의 발을 만지고 있는 엄마. ⓒ시사IN 이명익


    미등록 이주 아동이 성인이 되면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된다. 11월8일 전북 김제시에 있는 특장차 생산업체 HR E&I에서 일하다 숨진 강태완씨(32)도 다섯 살에 한국으로 건너와 자란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 노동자였다. 성인이 된 이후 9년 동안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일했던 강씨는 2020년 기간 내에 자진출국하면 재입국 기회를 준다는 법무부 정책에 따라 엄마의 나라인 몽골로 갔다가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비자를 받기 위해 일부러 원래 거주하던 경기도 군포에서 멀리 떨어진 비수도권 지역에 취업했으나(인구 감소 지역에서 5년 이상 거주하면 바로 거주비자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입사 8개월 만에 산재를 당했다. 이주로 시작해 이주로 끝난 삶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가르칠 방법이 없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 아이의 엄마도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마음이 무겁고 복잡하다. 그래도 맥스의 엄마는 가능하면 한국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니까 고향에 돌아가기도 어려워요. 가족 말고는 연락도, 관계도 다 끊어졌어요. 아이도 타이에 가서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직 갚아야 할 빚도 있고요.”
    그렇게 마음을 다잡다가도 한 번씩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지난 여름날 무더운 날씨에 마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상을 차리고 있을 때였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신고했는지 경찰차가 순찰을 돌았다. “한국 사람들 중에 이웃이어도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 많아요. 밥 먹으려다 말고 아이들 데리고 도망쳤어요.” 차리다 만 식탁에는 엄마들이 땡볕에서 하루 종일 몸을 숙이고 딴 채소가 있었다. “우리를 신고한 사람들도 먹을 거잖아요. 마늘, 오이, 고추, 고구마, 배추, 무, 딸기, 배, 사과···.”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을 기어코 쫓아내야만 하는, 저출생 때문에 나라가 망할 거라고 걱정하면서도 미등록 이주 아동은 한사코 받아주지 않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강태완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강씨의 정착을 위해 노력했던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자란 미등록 이주 아동을 쫓아내는 게 아동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로 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잖아요. 여태 추방당하지 않았다는 건 범죄 한번 저지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국가 입장에서 보면 생산인구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인데, 정작 한국에서 오래 산 이들은 쫓아내면서 외국인 노동자가 부족하니 데려오자는 게 과연 효율적인가요?”



    미등록 이주 노동자인 세 엄마가 자주 모이는 나나(가명)네 집 싱크대에 놓인 세간살이. ⓒ시사IN 이명익


    김사강 연구위원은 현재 시행 중인 법무부의 구제 대책만이라도 계속 유지하면서 범칙금에 대한 부담(현재 7년 이상 미등록 상태인 아동이 있으면 부모는 각각 3000만원씩 총 6000만원을 내야 한다)을 낮추고 ‘고등학교 졸업’ 조건을 ‘검정고시 통과’ 등으로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를 선택한 건 부모이지 아이가 아니에요.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요. 미등록 이주 아동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체류 자격을 주자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시행 중인 구제 대책도 기준이 높아요. 그래도, 그 정도라도 좋으니 구제 대책을 상시화하면서 보완해나가자는 겁니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미등록 이주 노동자 중에는 차라리 아이만 고국으로 보내는 걸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맥스, 제니, 나나와 함께 지냈던 마리도 생후 6개월 차에 타이에 있는 엄마의 친정으로 보내졌다. “사실 많이들 그렇게 해요. 한국에서는 도저히 아이를 가르칠 방법이 없으니까요. 부모가 동의서를 써주고 타이에 갈 일이 있는 지인에게 아이를 맡겨서 보내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조부모가 공항에 나와 데려가는 거죠. 타이로 가는 지인이 없으면 전문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맡기기도 하고요.” 한상훈씨가 말했다.
    세 엄마는 아직 한국에서 아이를 초등학교까지 보낸 사례를 직접 본 적은 없다. 갓난아기를 고국으로 떠나보낸 마리의 엄마와 주말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긴다. 저출생과 지역의 노동력 부족이 국가의 화두가 된 지금, 전국 곳곳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 2만명이 불안한 낮과 밤을 보내고 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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